어쩌다보니 나의 첫 종주기록이 빠졌있다는걸 뒤늦게 알게되었다.
그리하여 십오년 전 처음으로 지리산 종주를 했던 그 힘들고도 행복한 기억을 다시 한 번 되살려보기로.
2005년 여름
7월 23일 밤 출발; 총인원 열한명 - 김대장을 중심으로 그의 직장동료와 가족 그리고 동향인친구와 그의 후배들로 이루어졌다.
*지금 다시 보니 배꼽쥐게 웃기는 짐싸기
종주산행에 경험이 없으므로 배낭 꾸리기도 미숙하기가 짝이 없었던 우리
일단 카메라배낭에 -왜냐하면 사진 욕심이 컸었기때문- 짐을 넣어봤는데, 어찌된게 전부다 술이냐고~~ ㅋ
저 외에 옷가지나 음식과 간식 그리고 버너를 넣어야 했는데 그때는 휘발유버너로 덩치도 컸고 휘발유통 자체도 꽤나 컸기때문에 저 배낭으론 택도 없었다.
7월 23일 밤에 열차로 떠나는 시간은 지금이나 비슷한데 구례구역에 도착하는 시간은 지금보다 2,30분이 더 걸렸던 기억이다.
노고단 전망대에서 휴식 중 - 이때는 지금같은 중간에 가로지르는 계단길이 생기기 전이다.
젊다 젊어....
언제 저런 시절이 있었나 싶다.
노고단 운해가 멋졌던 날
당시에 유행했던 까마귀스타일 등산복들 ㅋ
홍산님 부부와 함께
이 때는 어디가 어딘지 봉우리 이름도 잘 모른채 무조건 앞사람 발뒤꿈치나 보면 따라다니느라 경치 구경할 정신도 없었다.
길고 긴 산행길이 고단하기만 하여 즐길여유가 없었다는거지.
예전 연하천 마당의 모습
여기가 연하천 마당이라고 하면 믿을까. 지금 돌아보니 지리산도 알게 모르게 계속 변해간다.
2005년의 연하천대피소
개인이 운영하던 시절이다. 샘이 잘 나오는건 똑같지만 위치는 지금과 좀 다르다.
취사는 무조건 햇반이었다.
각자 가져온 햇반을 데워 먹은다음 물과 휴지를 이용해 빈그릇을 닦아서 저녁에 건조국을 담아먹는 용기로 재활용을 했다.
마구 뒤섞어놓으니 누가 먹었던 그릇인지 알 수도 없는것을.. 지금 생각하면 좀 지나쳤다는 생각. (도대체 왜그랬을까?)
형제봉 위의 소나무인지 구상나무인지, 하여간 그 나무가 푸르고 싱싱했던 시절이다.
지금은 이미 오래 전에 고목이 되어 누워있으니 세월 참..
내 머리 위의 저 나무, 멋졌었는데..지
일행이 많으니 진행도 천천히,, 오후 5시를 훌쩍 넘겨서 도착한 벽소령
뒷마당에서 취사중이다
우리 산노을도 이 때는 몸매가 꽤나 푸짐했었다. ㅋㅋ
김대장님 젊은것 보소~~!! ㅎㅎ
우리보다 지리산을 1년 앞서 경험한 선배가 일행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ㅋㅋ)
그땐 초행이라 모든걸 그저 맡기고 따랐었던.. 지리산 첫 종주
벽소령의 화장실은 저렇게 이동식이어서 정말 가고싶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지금이야 전 지리산의 전 대피소 중 가장 마음에 드는 화장실을 가진 곳이 되었다만.
지금은 볼 수 없는 벽소령 뒷마당의 취사장.
취사장이 너무 멀고 오르내리기에 무릎 꽤나 아팠던 기억이.
산행 인구가 참 많던 시절 - 대피소 주변에 빈자리가 없을만큼 공간이 꽉차있다.
비박인구도 많아서 실내 취사장은 의례 그런 사람들의 잠자리였다.
안개가 가득한 벽소령의 밤
이런 산행이 처음이었던 나는 어찌나 피곤한지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어야했다.
역시 모든것이 처음은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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