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1일 토요일
강원도에 대설이 내린 주말이다. 전 날 걸려온 매우 눈을 좋아하는 사위의 전화 - 눈이 많이 왔다는데 오대산 가실래요~
올 겨울은 워낙 눈이 귀했던 터라 망설임없이 나서게 되었다.
아침 일곱시가 넘은 시간에 서울을 떠나 오대산을 향한다.
원주 기사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월정사를 지나 상원사를 오르는데, 이미 많은 차량들이 앞에서 거북이 걸음을 하고 있다.
주차장은 만차라서 길 가에 주차를 하고보니 상원사에서 1km나 떨어진 곳이다.
그러다보니 상원사에서의 출발은 이미 11시가 넘은 시간.
오늘 산행은 상원사에서 출발하여 비로봉과 상왕봉을 거쳐 미륵암쪽으로 하산하는 원점회기 산행으로 약 12km정도의 거리를 걸을 예정이다.
저 길은 임도를 통해 사자암쪽으로 오르는 길이고 산 길로 오르려면 상원사 내부를 통해야 한다.
상원사를 오르기위해서는 무지하게 깔딱진 계단을 올라야 한다.
흰 눈을 덮어쓴 쭉쭉뻗은 전나무들이 더욱 설경을 돋보이고 있다. 오대산의 특징적 모습이라 이름지어도 무리가 없을듯.
상원사를 막 벗어나자마자 산 길은 시작부터 급경사..
눈길인데다가 새벽잠 설치고 달려온 길이어서 몸은 무겁기만 하고, 아이젠 신은 다리가 말을 잘 듣지 않아서 시작부터 고역이다.
몸 풀려면 한시간은 걸어야 할 모양인데, 눈구경에 나선 등산객에다 절손님들까지 끊임없이 이어지는 인파때문에 매우 불편 불편..
경치 구경할 여유도 없이 사람에 밀려 삼십여분 걷다보니 사자암 도착.
산천은 의구한데 절 모습은 많이도 바뀌었다.
이십년 전 쯤일까. 적멸보궁에 올랐던 기억이 있다.
산에는 별로 잘 다니지 않던시절인데, 절마당은 조용했고 비도 약간 내리던 날.
적멸보궁까지 다녀오는 길이 어찌나 힘들던지.. 그런데 하산 중 사자암에 내려오니 힘든사람들에게 사탕을 보시하고 있는거다.
정말 고맙고도 맛있게 먹었던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 있다.
11시 35분인데 사자암에서는 점심공양이 시작되고 있었다.
우리는 아침은 먹었고 (게다가 산노을은 소화불량에 시달리고 있었기에) 사탕이나 한 알 물고 출발하려는데, 웬 아주머니가 이 모습을 보고는 사탕 좀 달라고 부탁. 오! 이건 무슨 인연이지? 내가 받았던 것을 다시 남에게 베푸는 기회를 얻다니.
적멸보궁을 지나야 제대로 된 등산로가 시작된다.
사실 상원사에서 적멸보궁까지는 거의가 다 계단길이고 절 내부 길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절손님 또한 아주 많아서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린 날 구두를 신고 오르느라 진땀을 빼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산을 오를수록 경치는 점점 더 멋있어진다.
아침식사를 너무 급하게 했던가. 소화불량때문에 고생하고 있는 옆지기.
응급처방으로 손톱끝을 자극하고 주물러줬다.
다행히 정상을 찍고 나서 몸은 좀 좋아졌다.
이제 깔딱고개 하나만 올라가면 정상이다. 그깟 400미터 쯤이야 ㅋㅋ
천천히 올라가기로.
상원사에서 출발한지 약 두시간 걸려서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엔 한라산 백록담처럼 정상석 사진을 위한 대기줄이 늘어서 있다.
다행인건 줄이 그다지 길지는 않았다는거. 블랙야크 100대명산 인증팀이 없었더라면 좀 더 시간 단축이 되었겠지만. ㅋ
암튼 십분정도를 기다려 우리도 정상 인증타임을 가졌다.
산행은 할수록 '인내는 쓰고 그 열매는 달다'는 격언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완전 기분좋은거~ ^^
역시 등산복은 빨강이와 파랑이가 사진빨 최고인듯 ㅋㅋㅋ
오후 2시 - 주목군락지를 지난다.
모래처럼 부서지는 눈은 아이젠도 소용없이 그저 속절없이 미끄러질 뿐, 급경사 내리막길에선 몸 가누기가 힘들 지경이다.
비로봉에서 상왕봉을 가는 오솔길은 무릎까지 덮힐만큼 많은 눈때문에 마주오는 사람을 비켜주기도 힘든 판인데 그 좁은 길에서 사진을 찍겠다며 길을 통째로 막는 사람들 때문에 진행은 더디기만 했다.
상왕봉을 오르기 직전, 준비해간 샌드위치와 뜨거운 차로 점심식사를 했다.
누군가 다져놓은 눈밭이었지만 의자를 놓고 앉으려하니 눈 속으로 쑤욱 빠져드는 의자때문에 눈치우기 노가다를 좀 더 하고야 간신히 엉거주춤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오후 3시 03분 상왕봉
이 곳에서도 비로봉에서 처럼 다른 분들과 서로 사진찍어주기 품앗이를 했다. ㅎ
상왕봉을 지나고도 약 삼십분간 지루한 눈과의 사투를 끝내고야 임도에 도착했다.
4시 30분 하산완료
그런데 차를 세워둔 곳까지 1km 걷기가 너무도 지루했다는거..
오늘의 산행 코스 - 산행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지만 관광버스로 눈꽃산행을 온 단체가 많아 약간 산란한 분위기가 에러였지만
누구나 할것 없이 아름다운 자연을 즐기고자 하는 마음은 같으니 그러려니.
왜 눈을 보면 모두가 아이처럼 즐거워지는걸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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