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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종주 마지막 날 - 세석에서 출발 천왕봉을 넘어 중봉으로 1

by 혜산 2019. 8. 8.

지난 밤에는 그동안 잠이 밀린 바람에 초저녁부터 완전 다운이었다.

사람들이 거실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는 동안에도 누워서 꼼짝없이 비몽사몽

실내가 너무 커서 그런지 사람이 적어서 그런지 추워서 몇 번 잠을 깼을뿐 그저 기절하듯이 잠을 잤다.

다른 일행들은 또 예외없이 잠을 설쳤다고 하소연인데. ㅎ

 

일어나보니 비소식이 들린다.

이른 새벽이니 또 한차례 쏟아지는것일수도 있고 걷는 내내 우리를 괴롭힐 수도 있기에 약간 긴장했다.

출발 전에 미시나 한그릇씩 마시고 장터목에서 누릉지를 끓여먹기로 했는데, 계획이 바뀌어 누릉지를 끓여먹고 출발하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잘한일인것이 그러는 동안 빗발이 서서히 잦아들었으니까.

경험상 알 일이지만 장마철 고산에서는 새벽에 한차례씩 비가 쏟아지기도 한다. 노고단에서도 그랬었다.

 

 

내리는 비로 고요한 세석 마당

나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지리산 전 구간 중, 가장 평화롭고 아름다운 아침을 맞이할 수 있는 곳이 세석대피소이다.

다른 대피소들처럼 바람이 심하게 몰아치지도 않고 복잡하지도 않다. (물론 때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그저 고요함속에 아름다운 새소리만이 영혼을 울리는 곳.

 

 

누릉지로 아침을 먹고 출발 준비를 하는 중. 김대장이 방명록에 글을 남기고 있다.

 

 

세석대피소 내부는 그대로지만 취사장만은 새로이 단장을 했다.

식탁은 있지만 문도 없이 활짝 열려있어 겨울이면 덜덜떨며 밥을 먹어야했던 그 곳엔 접이식 문이 달렸다.

그리고 의자는 없지만 반짝이는 스테인레스테이블이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화장실만은... 후지기로는 장터목과 쌍벽을 이룬다.

 

 

오전 6시 20분 출발준비 완료

 

 

약 십여분 올라오면 세석습지

호흡도 가다듬을겸 사진 한 장 남겨본다.

 

 

6시 40분 춧대봉

저 뒤편의 희미한 촛대봉을 배경으로 잘 넣어서 찍어야 한다고 이쪽으로 다가서라고 괜한 고집을 부리는 산노을.

뭐가 보이기는 하냐고요~ 그냥 웃어줬다.

아마 이 사진을 볼때마다 그 때가 생각날것 같아서 실소. ㅋ

 

어쨋든 이 곳 촛대봉을 내려서면서 시작되는 삼신봉 능선은 먼저 출발하여 신나게 독주~

원없이 걸어봤다. ㅎ

꽁초봉에서 후미를 기다렸으나 안개때문인지 올 기미도 보이지 않아 다시 연하봉까지 고고.

 

 

 

 

 

 

 

 

7시 35분 연하봉

연하봉에서 기다리고 있자니 제일 먼저 도착한 산노을이 잃어버린 마누라를 찾았다고 외친다. ㅋㅋ

 

 

이어서 속속 후미 도착.

우리와 같은 루트를 걷고있는 하늘색 비닐 우비를 입은 부자의 모습이 정겹다. 그런데 좀 덥지 않았을까. 주룩주룩 내리는 비도 아닌데..

 

 

야생화 꽃밭 - 얼마나 아름다운지. 촉촉히 내린 안개때문에 더욱 좋아하는것처럼 보인다. ㅎ

 

 

오늘은 어제보다 더 전망이 없다.

고도가 높아서인지 안개는 더욱 자욱할뿐.

 

 

오전 8시 장터목대피소

세석에서 꼭 한시간 사십분 걸렸다.

 

 

일년만에 찾은 장터목대피소 취사장

샘에서 물을 떠다가 미숫가루를 흔들어 마셨다.

이제부터는 한고개 오를때마다 기력이 뚝뚝 떨어질테니까 탄수화물을 충분히 섭취해둬야 할것이다.

 

 

 

 

배낭 메고 올라가는 제석봉은 더욱 힘겹다.

습기를 먹어서인지, 배낭도 무겁고 등산화도 무겁다.

 

 

 

 

 

 

 

말이 봉우리지 밋밋하여 봉우리라는 느낌이 없는 제석봉.

앞으로 올라갈 천왕봉이 기다리고 있어서인지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시간도 많고 후미도 있으니 천천히 찍을건 다 찍고간다. ㅎ

 

 

 

 

희야~~ 요 이쁜것!!

범꼬리 군락지에 왔다.

 

 

유독 이 곳은 지리터리풀과 범꼬리가 어울어져 너른 밭을 이루고 있다.

 

 

통천문만 지나면 천왕봉은 거의 다 오른 셈이다. 단지 세개의 짧은 계단, 그리고 약간의 너덜만이 남아있을뿐.

그렇지만 사실 이 구간에서 제일 힘들어하는것도 사실이다.

무지한 깔딱이라서 1900고지를 오르기위한 마지막 젖먹은 힘을 쏟아 부어야 하는 곳.

 

 

그러난 천천히 오를땐 얘기가 다르다.

그저 경치구경이나 하며 이렇게 쉬엄쉬엄 가다보면 힘들이지 않고도 바로 천왕봉을 알현할 수 있다는거.

 

 

세 개의 계단을 오른 뒤, 깔딱고개가 시작되는 곳.

뭐 그리 길지도 않다.

칠선계곡이 시작되는 곳에서 후미를 기다리며 장난삼아 '칠선계곡쪽으로 발을 넣어보면 어떨까 아니지, 감시카메라에 스피커까지 달려 있으니 참자' 이러고 있는데 느닷없이 국공이 나타났다. ㅋㅋ

국공중에서도 좀 계급이 높은 사람이었던지 나중에 치밭목에서 다시 만났는데, 떠나는 그를  모든 직원들이 길목까지 따라 나와서 배웅하는 모습을 보았다.

 

 

9시 19분 천왕봉과 다시 만났다.

 

저 뒤에 계신 분은 간식을 드시다 말고 우리 사진 찍어 주느라 두 번이나 호출을 당했다.

죄송해요~ ㅎ

 

여기서 한마디 하자면,, 도대체 천왕봉이라는 글씨를 보이게 기념사진을 찍으려면 곤혹스럽기 짝이 없다.

아슬아슬하게 바위를 내려서야만 여러사람을 한 앵글에 넣을 수가 있는데 오늘같은 날은 천왕봉 주위를 평탄작업하느라 덮어놓은 저 황색 진흙때문에 돌들이 얼음처럼 미끄러운거다.

아직도 하산하려면 10km 걸어야 하는데 여기서 미끄러지는 사고를 쳤다간 본인도 고생이지만 주위사람에게도 말할 수 없는 폐를 끼치게 되니 조심 또 조심해야했다.

 

 

 

 

중산리 하산길은 천왕봉의 오른쪽, 저 계단을 거쳐 5.3km만 걸으면 된다.

 

 

우리는 왼쪽 대원사 방향으로 하산시작.

 

14년전에 딱 한 번 걸었던 길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라, 예전의 기억이 하나도 없고 처음 오는 길처럼 힘이 드는거다.

오호라, 이것이 나이듦인가.

14년 전엔 내가 그리도 젊었던가. 힘들었던 기억이 하나도 없는데.. ㅎ

 

암튼 좁고 가파른 너덜길에 주위엔 우거진 풀들이 안개속에서 축축한 몸뚱이로 지나는 사람을 때려주기까지.

그러더니 급기야는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엥? 으쩌까 비옷을 입어 말어??

비옷이 없는 사람들은 선택의 여지없이 무조건 고고씽이지만 나는 변덕스럽게도 비옷을 꺼내 걸쳤다 벗었다를 반복했다. ㅋ

 

 

 

 

간식으로 과자 한개씩 입에 물었다.

다행히 비는 그다지 내리지 않았다. 비구름이 오락가락하면 가끔씩 뿌리는 정도일뿐.

 

 

가파른 길엔 이런 계단도 생겼다.

 

 

 

해발고도 1874m 중봉

지리산의 능선 중 두번째로 높은 봉우리지만 유명세로는 세번째인 반야봉의 발끝도 못 따라간다. ㅎ

그저 천왕봉의 중봉으로만 불리우고 있을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