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리산

2009년 마지막 지리산종주 -이튿날-

by 혜산 2010. 1. 3.

벽소령 대피소의 밤은 춥다. 장터목에 비하면.

그래도 그 중 따뜻하다는 2호실에서 한 잠 푹~ 잘자고 일어났다.

두 아이들은 기합이 들어서 그런지 어둠속에 일찌감치 일어나 짐을 꾸리고있다. 기특한것들~

취사장에서 남자들을 기다리다못해 올라갔더니 세상모르게 잠을 자고있다.

그러다보니 아침이 좀 늦어버렸다.  이 날 아침도 누릉지를 먹었다.

 

 

 

아침 7시 10분경 벽소령 취사장을 내려가면서 본 모습이다. 

하늘이 어찌나 곱던지 추위도 잊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아침먹고 짐꾸리고,, 대충 오늘의 날씨를 살펴 옷을 입는다.

마당에 바람이 별로 없는것으로 보아 날씨는 어제보다 한결 누그러진것 같아 다행이다.

거의 꼴찌로 대피소를 떠난 시간이 8시 45분 - 늦어도 너무 늦었다. 오늘 천왕봉을 올라야하는데..

 

 

 햇살은 이미 퍼져 따스하다. 돌 밭길인 구벽소령까지는 아이젠없이 걷기로 했다.

 

 전혀 겨울의 냄새가 나지않는 벽소령대피소의 모습

구벽소령에 도착하여 속에 입었던 조끼하나를 벗고 아이젠을 신었다. 그늘엔 그래도 눈이 많다.

늘 그렇듯이 이른 아침엔 몸이 풀리질 않아서,, 덕평봉을 오를땐 거의 초죽음이될만큼 힘이 든다.

 

드디어 도착,, 저 통나무 의자에 잠깐 몸을 의지하며 뒤쳐진 아이들을 기다린다.

 

벽소령대피소를 뒤돌아 보았다. 멀리 반야봉과 어제 우리가 밟고 지나온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형제봉은 소나무 잎에 가려졌다. 잘룩한 산허리에 벽소령대피소가 깜찍하다.

 

오전 10시  - 선비샘에서 눈꼽떼기 - 지리산에만 들어오면 물로 세수는 안녕이다. 특히 겨울엔.

그저 양치만 살짝하는 수준이어서,, 덕분에 편하다는 남자분들도 있다. ^^

 

  

오전 11시 영신봉 너머 촛대봉에서 천왕봉까지의 능선이 한 눈에 조망되는 곳 - 전망바위-  

따뜻해 보이지만 찬바람땜에 오래 앉아 쉴 수가 없을 정도여서 아이들을 기다리다가 할 수 없이 먼저 출발한다.

 

바로 앞 봉우리 너머가 칠선봉이고 그 너머가 영신봉이다.

 

11시 15분 칠선봉

걷자면 덥고 쉬자면 추운 날,, 날씨가 춥기도 하고 또 천천히 걷다보니 너무나 물을 안마셨나보다.

덕분에 이튿날 얼굴이 통통하게 부어버렸다. 목이 마르지 않아도 물을 충분히 마셔야한다는데..

 

 

  

 이제 천왕봉과 제석봉이 훨씬 가까워보인다.

그래도 만만치 않은 저 곳.. 아직도 까마득하다.

 

영신봉을 향한 길다란 계단. 아이들이 세어보니 180계단이라나..

 

계단을 다 올랐다. 저 아래 뭔가가가 보인다.. 뭐지?

열심히 머리를 맞대고 보아도 잘 모르겠다. 요즘들어 시력이 많이 떨어졌다. ㅠㅠ

 

 멀쩡하던 하늘에 구름이 몰리기 시작한다.

이러다가 천왕봉에 올라 아무것도 못보는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드디어 영신봉에 도착했다.

오늘따라 유난히 힘이든다.. 확실히 겨울 산행은 체력이 많이 소모된다.

그러므로 간식을 충분히 가지고 다녀야 탈진할 염려가 없다.

 

 

12시 30분 세석대피소

 

점심은 떡라면이다. 먼저 도착하여 물을 끓이고 있는데 아이들이 도착했다.

가지고 있던 라면을 다 꺼내어 끓이고 참치를 넣어 한덩어리씩 먹었다.

잘 먹어두어야 천왕봉을 오를때 탈이 없다. 커피까지 마시고 출발한 시간이 오후 1시 50분 (좀 늦었나~)

 

맑던 하늘이 점점 흐려진다. 우리가 진행하는 방향으로,, 뒤에서 구름이 좇아온다.

 

 촛대봉 정상에선 천왕봉이 아주 잘 보이는데,, 구름에 가려버렸다.

거칠것 없이 불어대는 바람이 무서워 얼른 정상에서 내려 숨어서 일행을 기다린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기온은 더욱 쌀쌀해진다.

까다로운 너덜은 눈에 덮혀 오히려 걷기에 편하다. -이것도 겨울산행의 이점 중의 하나-

점심을 든든히 먹고 라면이나마 짐을 덜었더니 한결 걷기가 편해졌다. 야호~

 

 

 연하봉을 향하여 열심히 영차~~

 

3시 20분 연하봉

 

김대장이 모든 이들의 건강을 기원하며 돌탑을 쌓았다.

두 소녀들의 걸음이 하도 느려 오늘의 천왕봉 행을 포기하려고 했는데,,  다녀올 희망이 생겼다.

헤드랜턴을 가지고 간다면 해가 진 다음에 하산해도 괜찮을것 같다.

그래야 내일의 일정에 무리가 없을것 같아 시도해보기로 한다.

 

이것도 연하선경의 일종일까..

지리 주능선을 중심으로 북쪽에서 구름이 세차게 능선을 넘어 남쪽에 쌓이고 있다.

 

장터목을 향한 마지막 오름

여기에만 오르면 늘 기분이 좋다~

 

연하봉의 뒷모습 - 역시.. 연하봉은 그 자태가 빼어나다.

 

 

 3시 40분  장터목대피소 도착

 

취사장에 배낭을 모아두고 캔맥주 하나씩만 주머니에 넣고 천왕봉을 오른다.

모처럼 남자분들이 무거운 짐을 내리고 편안하게 빈 몸으로 걷는다.

 

제석봉,, 죽어서 천년의 저 고사목도 점점 사라져간다.

 

 

 통천문을 지나 되돌아 본다.

우아~~ 멋진걸!!

오래도록 바라보고 싶지만 서산에 지는 해가 발걸음을 재촉한다.

 

5시 10분 천왕봉

 

매서운 바람에 날려갈 듯하다. 조금만 오래 있다가는 얼어서 동태가 될것만 같아 증명사진 한 장 찍고는 바로 도망~

 

 

 

  

천왕봉위에 달이 떴다..

맥주로 무사 등정을 축하한다.

꿀맛인 맥주!

달이 밝은 덕분에 헤드랜턴 없이도 장터목까지 잘 내려올 수 있었다.

 

장터목 대피소엔 예전 연하천 산장지기였던 김병관님이 홀로 지리산 케이블카 설치 반대 운동을 무기한 계속하고 계셨다.

술 한 잔 드리려고 하니 막걸리 외엔 안드신다고 하면서도 한 잔 받아드셨다.

 

 이지가 묵은김치로 오리 보쌈을 싸서 입에 넣어드리니,,

답례로 싸인을 넣어 책갈피를 선물로 주신다.

 

 이건 이지꺼..

 이건 지수꺼..

 

이렇게 장터목의 밤은 깊어간다.

미역국에 밥 말아 먹고 커피까지 한 잔 마셨는데도 오랫만에 푹~ 정말 잘잤다.

그런데 이 닦으려다가 - 거짓말 조금 섞어서 - 얼어 죽을뻔했다. ^^

장터목의 밤은 정말 춥다.. 아무리 화장실 가고 싶어도 아침까지 참고 또 참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