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서 나흘째 되는 날은 차를 가지고 폼페이로 향한다.
텐트는 그냥 놓아 둔채 폼페이에 갔다가 다시 로마로 돌아올 예정이다.
동로마 인터체인지를 벗어나 로마의 서해안을 따라 남동쪽으로 213km떨어진 곳에 폼페이가 있다.
고속도로를 따라 약 두시간 남짓을 달린다.
폼페이 유적엔 입구가 여러개 있는데, 우리가 도착한 쪽엔 제대로 돈내고 주차할만한 주차장이 없는거다.
물건을 차에 두어야 하는 우리로서는 혹시라도 차털이 도둑놈이 있을까봐 신경이 많이 쓰인다.
무슨 식당가 앞쪽 작은 마당에 차를 세워볼까 어쩔까 하는 참에 나타난 웬 넘,, 돈 내란다..
안그래도 돈내고 차세우고 싶어 안달난 우린 달라는대로 얼른 돈을 주고 주차를 하는데, 그러나 뭐 주차선도 없고 주차권도 없고,,
뭔가 좀 미심쩍기는 하다.
어떤이들은 차를 통째로 도난당한 경험도 있다하여 운전대에 열쇠를 채우기도 하는 등, 악명높은 이탈리아의 도둑들 때문에 엄청 고역이다.
어쨋든 믿고 차를 세웠다 싶어 안심하고 폼페이로 입장을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곳은 돈을 낼 필요가 없는 곳이었더라는 말씀.
게다가,, 깜빡하고는 차를 잠그지도 않았다니 이게 무슨 청천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리인지,,
노트북 잃어버렸나 싶어 까무짝 놀라 간이 떨어지는 줄 알았었다.
그래도 별사고가 없어 천만다행..
폼페이의 전체 지도. 저래봬도 엄청 넓은 곳이다.
먼저 폼페이에 관해 이야기 하자면,
폼페이는 신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한 고대도시이다.
기원전 8세기경엔 그리스의 지배를 받았고, 에투루리아인이나 삼니움족 등에 의해 침략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BC 89년 술라에 의해 정복당하고 로마의 시민권을 받으면서 로마화가 되었다.
서기 62년 네로황제 시대에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여 큰 해를 입었다가 17년 후(티투스 황제가 즉위하던 해인) 서기 79년 8월 24일에 일어난 더 큰 화산 분화로 전 도시가 완전히 매몰되었다.
화산폭발이 멈추었을 때 폼페이는 깊이 6~7m의 화산력과 화산재로 덮였다고 한다.
겉으로 척보아도 도시의 규모는 참으로 엄청나다.
이천년 전의 건축술이 대단한건지,, 그 높이가 그 시절의 기준으로 본다면 참으로 굉장하다는 느낌..
이 곳은 공연장이다.
외벽은 아니지만 내부의 계단은 나중에 다시 만들어진것 같다. 저렇게까지 멀쩡할 수는 없지 않을까..
사진 한 장 찍으면서도 얼른 그늘로 도망치고 싶다. 어찌나 태양이 뜨겁던지..
이 길이 바로 로마가도의 원형이다.
1m이상 깊이로 땅을 파고 그 곳에 잔돌을 채우고 제일 위를 또 커다란 돌로 포장하는 로마시대의 고속도로.
길에는 마차가 지나다녀 약간 우묵해진 흔적이 남아있는 곳도 있다.
건물이나 기둥 속은 이런 벽돌이고 바깥쪽은 화강암이나 대리석으로 치장했다.
아마도 공회당이나 무슨 공공장소였던듯 하다.
도로 중간 중간엔 이렇게 사람이 건너다니는 횡단보도 인듯한 징검다리도 있다.
그 시절에도 인도와 차도의 구별이 엄연하다는 놀라운 사실..
사람들이 다니는 인도도 이렇게 멋있게 치장했다. 지금도 이 옆에서 붓과 몇가지 연장을 가지고 발굴을 계속하고 있다.
중앙 광장이었던 곳, 이 도시 최대의 중심지였을 것이다.
광장 바닥도 원래는 다 대리석으로 덮혀있었던 것 같다.
하여간 이 모든 거리와 집들이 완전히 땅속에 묻혀있던 것들인데 이만큼이나 발굴해낸 것도 엄청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발굴작업은 거리 곳곳에서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다.
뒤편으로는 이 도시를 삼켜버린 주범인 베수비오 화산이 근엄하게 폼페이를 내려다보고 있다.
도시 곳곳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모아놓은 곳.
이것들은 극히 일부분이고 더 많은 유물과 사람과 동물의 시신등은 박물관에 모여있다고 한다.
여기에서는 사람이나 도자기나 똑같이 취급을 받고 있다.
그냥 진열대 위에 먼지를 뒤집어쓴채로 누워있네..
뒤에 있는것은 동물로 아마도 개인거 같다. 그리고 앞에 있는 푸르스름한 장식품은 조개껍데기 따위를 붙여서 만든 공예품인데
이천년 전의 사람들이 만든것이 오늘날 우리의 공예품과도 많이 비슷하다는 느낌이 거대한 건축물에서보다 더 마음에 와 닿았다.
확실치는 않지만 사람들의 저런 모양은 용암속에서 인체가 분해되고 남아있는 빈공간에 세멘트를 흘려넣는 방법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저 속에는 유골이 그대로 들어있다. 저사람은 아마도 유독가스에 질식되어 앉은채로 사망했나보다.
이 세련된 부뚜막은 오늘날 사용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멋지다.
어떻게 대리석 조각을 저렇게 잘 맞춰서 붙여놓았을까.. 그저 감탄스러울 뿐이다.
생활수준이 얼마나 높았는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싶다.
그 시절의 화려한 색상이 아직도 그 빛이 바래지 않고있다.
쪽문이 이어진걸로 봐서 홍등가가 아니었나 짐작한다. (가이드 없이 다니면 이런 부분이 좀 아쉽다)
이천년 전의 화려한 빛깔
어찌 남아있을까..
거리는 엄청나게 구획정리가 잘 되어 있다.
어디로 가던지 길을 사통팔달이다. 마구잡이로 조금씩 늘려가며 커진 도시가 아니라 마치 오늘날의 신도시처럼 계획된 도시로 보인다.
아마도 십여년전에 일어났던 1차 베수비오 화산의 분화로 거리가 재단장 되었기에 그런것이 아닌가 하고 추측을 해본다.
야외에 있는걸로 봐선 작은 연못인지,,
일일이 설명할 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
모든 집에는 벽만 있을뿐 지붕은 없다.
이런 집들은 모양이 좀 특이하다.
요건 아마도 호화주택의 마당에 있는 작은 분수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아무리 호화주택이라 하더라고 그 규모가 그렇게 많이 크지는 않다는 느낌인데,
역시 로마인은 덩치가 작은만큼 그 스케일도 작은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 시신은 머리부분의 두개골이 다 드러나 있다.
어찌보면 이런 상태로 수백년을 놓아 둔다는것이 우리 정서로는,, 고인에게 정말 못할짓을 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폼페이는 고대 로마시대때부터 휴양도시인 나폴리와 불과 23km떨어진 곳이다.
그래서인지 오랜 옛날부터 꽤나 번성한 큰 도시였나 보다. 도시 안에 아폴로를 모시는 신전도 있고 황제의 정원까지 있는걸 보면.
벽 두께도 장난이 아니다.
예전 로마의 주택들은 길가 쪽으로는 창문이 없었다고 한다. 집 안 마당쪽으로만 창문을 냈는데, 그 이유는 길가가 시끄럽기도 하지만 작은 문 하나로도 충분할만큼 태양이 강렬하기 때문이라고.
도시의 공동수도. 물이 나오는 부분도 밋밋하게 두지않고 조각을 할만큼 여유가 있다.
곳곳에 저런 시설이 있는데 오늘날에도 물이 나오도록 해 놓은곳도 있다.
기둥머리는 - 미술시간에 배웠던 - 이오니아식 기둥장식이다.
이것은 또,,, 코린트식 기둥머리.
아무래도 그리스의 지배를 받았던 곳이니까 그 영향이 지대했나보다.
품페이의 유적중 아주 유명한 곳 중의 하나인 공중목욕탕.
이 곳 역시 문을 제외하면 창문이 하나도 없지만 그 대신 천정에 채광 및 환기창이 있다.
대리석이 얼마나 고은지,, 잘 닦으면 지금 사용해도 될 것 같다.
로마시대 황제들은 공중목욕탕 짓기에 신경을 많이 썼다.
단순한 목욕탕이 아닌 목욕과 맛사지 그밖에 게임이나 놀이시설까지 갖춘, 오늘날로 말하면 종합 레저 시설이었다고 한다.
로마같은 큰 도시는 물론 이런 작은 지역까지 -병원은 없어도- 목욕탕은 있었다는 것이 그 증거.
천정의 환기창은 약간 사면에 위치하고 있어서 빛이 들어오거나 환기를 시키기에 충분하면서도 비는 잘 들어오지 않게 생겼다.
옆 방에는 마사지 침대와 의자가 있다.
다 돌아다니려니 한도 끝도 없고 힘도 많이 든다.
일단은 매표소 옆 안내소에서 가져온 지도를 보고 동선을 정하는 것이 좋다.
유명한 곳은 다 표시를 해 놓았으니까.. 단 이태리어라서 알아보기가 힘든것이 단점.
정교한 대리석 타일로 장식한 바닥
그시절 벽화도 남아있다.
얼마나 정교하고 단단하게 벽돌을 쌓았으면 화산재와 흙속에 1700년을 묻혀있었어도 무너지지 않고 버티고 있는것인지.
뭐 나중엔 복원을 하기도 했겠지만 이천년이라는 세월을 생각하면 경이로운 일이지 싶다.
신을 모시는 작은 사당이었을까?? 아주 작은곳까지 세밀하게 신경을 써서 만들었다.
이 장소는 도시 번화가에서 조금 떨어져있다. 지도에 의존해 찾느라 한참을 걸어야 했다.
자세히 보면 건물마다 고유 번호가 붙어있다. 이것과 지도를 매치시켜서 자알 찾아다녀야 한다.
무대뽀로 다니다가는 다리에게 못할 일을 시킬뿐으로 머리가 좋아야 수족이 고생을 면한다는 말씀을 실감한다.
이 도시의 모든 사람들이 모두 몰살당한것은 아니고 더러는 피난도 가긴 했지만 그것을 거부하고 남아있던 사람들이 변을 당했다고 한다.
적어도 전체 인구의 십분의 일 이상이(약 이천~오천명정도) 사망했다고 하니 그 시절로서는 무시무시하게 큰 사고였다.
어린아이도 있고 몸을 반쯤 일으킨 모습을 한 사람도 있다.
대부분은 유황이나 유독가스에 질식하여 사망했을것으로 추정한다.
화산재가 4~5미터 정도나 쌓인곳에 비마저 내려서 콘크리트처럼 굳었을것이라고 한다.
이 곳을 마지막으로 폼페이를 떠난다.
폼페이까지 온 길에 소렌토를 잠시 보고 떠나고자 남쪽으로 이동한다.
저멀리 해안에 있는 도시가 나폴리고 그 오른쪽에 폼페이와 베수비오화산이 있다.
즉 나폴리와 소렌토 사이에 폼페이가 있는거.
소렌토는 바다쪽으로 길게 뻗어나온 반도이다.
바로 이렇게..
참 딱해 보인다,,
바다는 저렇게 아름다운데 정작 한가로이 바닷가에 누워있을 손바닥만한 모래톱도 없으니..
그럴수밖에 없는것이 바닷가는 모두 절벽지대이다.
돌아오라 소렌토로~~흠..
베수비오 화산. 지금은 사화산인지 휴화산인지 잘 모르겠네.
푸른 바다를 바라보니 마음도 넓어지는것 같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이 주변은 황제들이나 세도가들의 별장이 모여있는 유양지로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와보니 역시 그 이유를 실감할만 하다.
바닷가 절벽에 잠시 차를 세우고 일대를 감상 한 후,,,
다시 로마로 돌아간다.
참고로 워낙 이탈리아의 차로가 좁긴 하지만 나폴리에서 소렌토로 가는 도로는 어지간이 꼬불꼬불하고 좁다는거.
그런대다가 마주오는 차들은 전혀 조심성 없이 마구 들이댄다. (성질급한 인간들..)
그러니 뒷좌석에 앉아서도 그리 편치는 않다.
이 노점은 생긴 모양이 참 특이하다~ 즉석에서 과일로 쥬스를 만들어준다.
여자분 복장 좋으시고..(저런 사람들 속에서 나는 꽁꽁 싸고 다녔으니 얼마나 튀어보였을까)
남자분들만 눈이 호강했다. ^^
다시 로마로 돌아왔다. 널어놓고 간 빨래들이 잘 말라 있다. 이 캠핑장에선 빨래대를 빌려준다.
이제 오늘밤을 마지막으로 로마를 떠나 내일은 피렌체로 간다.
이탈리아 지도를 잠깐 보면,,
로마에서 비스듬한 아래쪽에 나폴리가 있고 나폴리 곁에 폼페이, 그 아래 삐죽 튀어나온곳에 소렌토가 있다.
그 앞바다의 카프리섬도 유명한 관광지로 그 곳엔 제정로마의 1대 아우구스트와 2대 티베리우스황제의 별장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왼편의 커라란 섬이 사르데냐, 그 위쪽이 코르시카섬이고 아래쪽에 보이락말락하는 커다란 땅덩어리가 가장 큰 시칠리아 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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