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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

이탈리아 -로마의 바티칸시국

by 혜산 2010. 10. 3.

로마 관광 이틀째

오늘은 바티칸 시티투어 하는 날이다.

역시 전 날처럼 역에서 가이드를 만나기로 하는데, 바티칸은 로마의 중심지를 가로지르는 테베레강 너머에 있으므로

어제와는 방향이 반대다.

 

캠핑장은 로마 시내에서 보면 약간 외곽이다.

지하에 묻힌 수많은 유적들도 그렇고 과거와 미래가 현존하는 로마는 그때문에 더이상의 지하철 공사도 쉽지 않은탓에

지하철 노선도 단 두 개로 매우 간단하다.

때문에 이 곳까지는 지하철이 아닌 기차로 연결된다.

 

겉보기는 멀쩡한 저 기차역 - 거기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이 지경이다. 으시시..

 

기차에도 멋드러진 낙서가..

이걸 보고 사회 불만분자가 많은가보다고 누가 그런다.

 

  듀 폰티 기차역에서 기차를 기다려 타고 지하철역과 환승이 되는 플라미니아역으로 간 다음 바티칸이 있는 옥타비아역으로 간다.

 

바티칸의 삼면 - 광장을 면한 곳을 제외한- 은 저런 성벽을 두르고 있다 아마도 지대가 좀 높은가보다.

 

 수많은 관광객,, 조상이 남겨준 유산으로 수많은 관광수입을 올리고 있는 이나라가 부러웠다.

 

 입장 순서를 기다린다. 우연히도 우리와 같은 캠핑장에 둥지를 튼 우리나라 청년들도 어제에 이어 오늘도 시내투어를 함께한다.

 참 대단한 젊은이들이다.

 목에 걸고 있는 저것은 수신기이다. 가이드가 작은 소리로 종알거려도 저 수신기를 거치고 이어폰을 통해 귀로 곧장 들어오니

시끄러운 곳에서도 참 유용한 장치인가 싶다.

 

바티칸을 입장하려면 우선 공항 검색대처럼 짐과 몸을 검색한다.

하긴 국경이 다른 한 나라이니만큼 그런 절차는 필요할것이다. 게다가 특정 종교에 의한 나라이므로..

그런 다음 이층으로 올라가 매표를 한다. 놀랍게도 한국말을 하는 매표원이 있어 한국인의 위상을 실감하다.

입장료는 약 만팔천원 정도.

오늘 하루를 온통 이 곳에서 보낸다고 했다.

 

 성베드로 성당의 돔

 

박물관에 입장하면 일단 사전 가이드가 있다.

수많은 관광객에 떠들어대는 가이드때문에 골치를 썩다못해 내놓은 해결책은 한적한 곳에서 미리 안내를 하는것.

그래서 몇 몇 곳에 이런 자리를 마련해 놓았다.

 

약 삼십분간에 걸쳐 가이드의 설명이 이어진다. 듣다보니 졸립고 돌아보니 우리 일행중엔 졸고 있는 분도 계시네. 후후

 

 이것이 그 유명한 미켈란젤로가 그린 시스티나 성당의 천정화를 보여주는 그림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천지창조의 순간은 딱 가운데 위치하고 있다.

 미켈란젤로는 메디치가문 출신 교황 율리우스2세의 전폭적인 후원을 받으며 성장한 천재 화가이지만 저 그림을 완성하기까지는

우여곡절도 많았나보다. 성격도 까칠해서 교황과도 마찰을 일으킬만큼 주위사람에 의한 자신의 예술관을 침해받기를 거부했던 인물.

 

브리핑을 마치면 박물관 안뜰인 솔방울 정원으로 나온다.

로마 어느 분수의 일부분이었다는 저 솔방울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솔방울 정원에 있는 '지구 속의 지구'라는 작품

 

환경오염으로 죽어가는 지구를 표현했다고 하는데 손으로 돌리면 쉽게 돌아가도록 설계되어 있지만, 만약 맘대로 돌렸다가는

시커먼 양복을 입은 떡대들에게 혼날 각오를 해야한다. 

 

이제 박물관으로 입장.

박물관은 교황의 궁전인 벨베데레궁이다. 1606년 이래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고 함.

수세기동안 영화를 누려왔던 로마 교황청의 교황들과 예술을 사랑했던 교황 율리우스2세에 의해 모아진 (기증받고 헌납받고 몰수하고 )

수많은 작품들이 모여있다.

 

 

라오쿤 군상

라오쿤은 '트로이 목마'의 위험성을 미리 깨닫고 이를 사람들에게 알리려다가 아테나 여신의 분노를 산 나머지 그녀가 보낸 두마리 뱀에 의해

두 아들과 함께 살해당했다. 죽임을 당하는 순간의 고통이 표정 하나 하나에 그대로 느껴질만큼 뛰어난 걸작품이다.

 

박물관의 작은 정원엔 헬레니즘의 걸작품들이 모여있다.

 

메두사의 머리를 들고있는 페르세우스입상

정원의 자연채광에 의해 그 작품이 더욱 빛을 발한다.

 

이제 내부로 입장하면

 

눈을 두는 어느 한 곳도 빈 곳이 없을만큼 가득 찬 예술작품에 놀랄 뿐이다.

 

 

 

 

 

 

한때 교황청의 권위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금박으로 장식된 저 천장만 보아도 알것같다.. 

 

바닥을 보면 모두가 조그만 대리석 타일의 , 이 또한 작품인거다.

 

 

아무리 수많은 사람들이 밟으며 수백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그대로이고 , 앞으로도 장구한 세월동안 그 모습은 변함이 없을것이다. 

대리석에 저렇게 다양한 색상이 있는 줄은 미처 몰랐었는데.

 

이탈리아는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크고 긴 산맥을 가지고 있어 거기에서 질좋은 대리석이 많이 나온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온갖 유적은 모두 다 화려한 대리석으로 장식되어 있다. 그 뿐인가 외국으로 수출까지 하고 있으니 이 또한 부럽고..

 

라파엘로의 방 - 가운데 그림이 '산 위에서의 그리스도의 승천'

 

라파엘로는 미켈란젤로와는 대조적인 인물로 동시대인이지만 참 대조적인 삶을 살았다고 한다.

별로 좋지 않은 집안 출신에다 좀 덜 생긴 외모와 까칠한 성격 등 좋지 않은 면을 많이 가지고 있던 미켈란젤로에 비해

라파엘로는 좋은 가문 출신, 잘생긴 외모 좋은 성격 등으로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그러기에 교황청의 한 방을 꾸미라는 교황으로부터의 임무가 주어졌고, 그러나 미처 다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떴기에 제자가 마저 완성했다고 하며 오늘 날에는 라파엘로의 방으로 불리워진다.

 

 아테네 학당 -

가운데 서있는 두사람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이고 두꺼운 책을 들고 열심히 공부중인 사람이 소크라테스.

 계단에 앉은 노인네가 디오게네스, 앞의 책상에 앉은 사람이 헤파이스토스지만 모델은 미켈란젤로라고 한다.

 성당의 천정화를 완성한데 대한 존경의 표시로 원래의 계획엔 없었지만 그려넣었다고 한다.

 

  

박물관 관람을 마치면 드디어 대망의 천정화를 보러 시스티나 성당으로 향한다. 

 

미켈란젤로의 천정화 - 시스티나성당

 

이곳에서는 사진 절대 엄금 - 키가 큰 경비가 지켜서서 사진 찍는 사람을 제지한다.

뭐 위대한 예술작품에 대한 예의하나 뭐라나..

그래서 이정도로 슬쩍 찍는것에 만족하고 철퍼덕 주저앉아 한없이 천정을 바라본다. 과연 가이드 말대로 눈에 담아가는 것이 진짜다..

사진이야 인터넷에서 구하면 얼마든지 있다.

 

얼마나 대단한 작품인지.. 그저 말문이 막혔다.

 

시스티나 성당은 일반인이 미사를 드리는 성당은 아니다.

성직자들의 모임이나 회의 등이 이뤄지는 곳,, 교황이 서거했을 때 추기경들이 모여 새 교황을 선출하는 방이라고 했다.

 

 

 

새로 선출된 교황이 성의를 끌며 베드로 성당으로 향한다는 계단.. 나도 걸어봤다.

 

베드로성당의 중앙 돔

 

미켈란젤로가 설계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때 미켈란젤로는 이미 칠십 고령이었으므로 시공과 준공은 다른 사람에 의해 이루어졌다.

 

 바닥의 대리석 장식 

 

베드로 성당의 중앙제대는 교황이 미사를 집전하는 곳이라고 한다.

37톤의 청동을 이용한 어마어마한 예술작품이기도 하며, 이를 충당하기 위해 판테온 내부 돔에 장식되어 있던 청동 조각품을 떼어오기까지 하여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저 제대 밑에 베드로의 무덤이 있다고 했다.

 

애초에 성베드로성당은 서기 326년 콘스탄티누스의 명에 의해 베드로의 무덤위에 지어졌다.

오랜 세월이 지나 너무 낡아버린 성당을 서기 1506년 메디치가문 출신의 교황 율리우스2세때 다시 재건을 시작했다. 그 후 무려 120년이라는 긴 세월,, 20대의 교황을 거치는 동안 수많은 예술가와 건축가의 손을 거쳐 완성된 것이 오늘날의 성베드로 대성당이다.

성당의 지하엔 100여개의 역대 교황의 무덤이 있다.

 

 중앙 제대의 캐노피인 '베르니니의 발다키노'  - 베르니니는 이탈리아 피렌체 출신인 바로크시대의 유명한 조각가.

 

미사가 시작되고 있었다.

파이프오르간 소리에 이끌려 미사석으로 향했다.

 

기둥에서 꼭대기까지의 높이는 29m

 

그동안 그림으로만 보아왔던 청동으로 만들어진 이 우람한 기둥을 실제로 보니,, 역시 대단하다.

성당이 어찌나 큰지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찾아 이리 저리 헤매고 다녔다. 이럴땐 그저 사람들이 많이 몰려있는 곳으로만 가면 확률 100%!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피에타는 이태리어로 슬픔, 비탄 이라는 뜻.

그의 나이 25세때의 작품이다.

 

어느 정신병자에 의해 상해를 입은 뒤로 저 멀리 유리 벽 속에 숨어버려 너무 멀었다.

 

 숨진 아들을 품에 안고 있는 성모마리아의 비탄에 젖은 표정,, 이 그림으로는 표현이 안된다.

 조각상은 다각도에서 보아야 그 진면목을 볼 수 있다. 특히 이 작품은 위에서 내려다 볼때 그 완벽함을 느낄 수 있다고 하는데

 그럴 수 없음이 아쉽다..

 

암튼 이 작품 하나로 미켈란젤로는 당장 위대한 예술가의 반열에 들 수 있었다.

 

 

이제 모든 관람을 마치고 밖으로 나간다.

 

 

입구 회랑에서 내부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 다섯 개 있는데, 맨 오른쪽에 있는 청동 문이 ‘성년의 문(Porta Santa)’이다. 1950년 성년을 기념해 스위스의 신자들이 제작하여 기증한 이 문에는 열여섯 편의 성경 이야기가 부조되어 있다.

전통적으로 이 문은 50년 주기의 성년이 되는 해에 1년동안 열리는데, 오직 교황만이 이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다고 한다.

 

성당 정면 - 여덟개의 거대한 대리석 기둥

높이 27미터에 지름은 3미터나 된다. 

 

  

광장은 반원형의 대리석 기둥이 284개나 늘어서 있다. 높이는 17m라고 한다. 

 

<자료사진>   성당의 돔에서 바라보는  바티칸 광장과 로마 시내   

 

넓디 넓은 광장에서 증명사진 찍고,,  

 

분수대 그늘에 앉으니 어찌나 시원하던지.

 

이제 로마시내 관광은 아쉽지만 여기에서 끝이다. 내일은 폼페이를 갈 예정이니까.

젤라또 - 이태리 말로 아이스크림이다.

이태리 아이스크림은 소프트아이스크림이다. 싸고 유명하다는 곳에서 줄을 서서 기다린 끝에 한 개씩 사먹고 다시 캠핑장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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