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두천시 소요동에 있으며 한수 이북 최고의 명산, 또는 경기의 소금강 등으로 불린다. 서울에서 44km, 동두천 시청에서 동북쪽으로 약 5km의 거리에 있는 소요산 (587m) 은 해발은 낮아도 수목과 폭포, 봉우리가 줄지어 있다. 소요산에는 곳곳에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이야기가 스며 있다. 요석공주가 머물렀다는 별궁터와 원효가 수도했다는 원효대도 있고 정상인 의상대 옆에 있는 공주봉(원효가 요석공주를 두고 지은 이름)도 있다. 산 중턱의 '자재암'은 원효대사가 도를 깨친 곳으로 원효가 요석공주와 인연이 있은 후 심산유곡인 이곳을 찾아와 수행하다가 절을 지었다고 한다. 수행 도중 관세음보살과 친견하여 자재무애의 수행을 쌓았다하여 자재암이라 했다고 한다. 자재암 주변엔 아담한 물줄기의 폭포가 널려 있다. 원효폭포, 옥류폭포, 청량폭포, 선녀탕 주변엔 여름철마다 피서객들로 북적댄다. 자연석굴인 나한전과 산중턱의 금송굴도 신비롭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던 혼란한 시기에 생존하였던 원효 (元曉 617-686) 는 의상과 더불어 당나라에 유학하려 두차례(34세, 650년 및 45세, 661년) 나 시도하였으나 자신의 마음밖에 따로 법이 없음을 깨닫고 혼자 되돌아와 보편적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왕성한 저술, 선교활동을 펴,그 사변력, 통찰력과 문장력에 대한 명성이 항간에 자자하였다. 그는 광대들이나 쓰는 무애박을 치고, 무애가를 부르며, 무애춤을 추며, 광대, 백정, 기생, 시정잡배, 몽매하고 늙은사람들 사이를 방방곡곡 떠돌며 춤추고 노래하며 술마시고 거문고를 켜며 무수한 대중에게 불법을 전하였다. 코흘리개 아이까지도 부처에 대해알게 되었다.
김춘추의 둘째누이인 요석공주(瑤石公主)는 첫남편을 백제전투에서 잃고 홀로 되었는데 불심이 깊었던 공주는 인격이 고매하고 화랑시절 백제전투에도 참가했던 원효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원효는 667년 문무왕 7년경(51세) 부왕인 태종무열왕의 과부공주인 요석과 만나 얼마후 설총을 낳고 이후 스스로 소성거사(小性居士, 小姓居士) 라 하며 무애의 보살행을 행하였다 한다.
결혼전 원효는 거리에서 다음과 같이 외쳤다고 한다.
"누가 자루빠진 도끼를 주겠는가? 내가 하늘을 떠받칠 기둥을 깎으리라." 이를 귀부인을 얻어 어진 아들을 낳고 싶다는 원효의 결혼에의 관심으로 보는 견해도 많지만 새 시대의 지평을 열어보이리라는 사상사의 선언으로 보는 견해가 더 우세하다. 소요산에 가면 원효가 과연 어떤 생각을 했는지를 알수 있는 자취가 여기저기에 남아 있다.
"높은 산 불끈 솟은 바위는 지혜로운 이가 들 곳이요,(원효대)
푸른 소나무 깊은 골은 수행자가 깃들 곳이니라.(자재암)"
"주리면 나무열매를 먹어서 주린 창자를 달랠 것이요,(소요산)
목이 타면 흐르는 물을 마셔 그 갈증을 식힐 것이니라.(원효폭포)"
"메아리가 울리는 바위굴을 염불하는 법당으로 삼고,(나한전-굴)
슬피우는 기러기를 기쁘게 마음의 벗으로 삼을 것이니라."
자재암은 신라 선덕여왕 14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고찰로 조선세조 10년에 간행된 반야바라밀다 심경약소 언해본이 완벽하게 발견되어 보물 1211호로 지정되어 보관되어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의상대는 소요산 정상에 있는 봉우리로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있어 가을 단풍과 겨울 설경이 장관이다.
소요산은 소요산역이 있는 소요동이 산행의 들머리가 된다. 입구에서 중간의 주차장과 상가를 지나 그저 평탄한 길을 따라 가다보면 '소요산 자재암' 이라 쓰인 현판을 단 일주문에 들어서게 된다. 여기서 조금 오르면 기암 절벽 사이로 떨어지는 원효폭포가 있고 그 폭포아래 속리교라는 다리가 있다. 여기서 두 갈래 길이 나타나는데, 오른쪽으로 난 계곡길을 따라 오르면 남쪽 능선 위, 소요산의 정상인 의상대(587m)로 바로 오르게 된다.
속리교를 지나 왼쪽의 난간으로 난 길을 계속 오르면 절벽을 이룬바위가 나타난다. 원효대사가 수도 한 곳이라는 전설이 서려있어 원효대라는 이름이 붙었다. 양쪽으로 치솟은 암벽 사이의 숲길을 오르면 곧 세심교에 다다른다. 이곳에서 백운암 돌담 옆을 지나면 곧 자재암에 닿는다. 자재암 옆에는 나한전이라고 불리는 자그마한 굴이 있는데, 여기에는 아주 맛있는 물이 솟아나온다.(원효샘물)이 물은 최고의 차맛을 내기로 유명하여 이곳은 예로부터 시인묵객들의 담론과 산책을 유도한 우리나라 차문화의 산실이다. 그 옆에는 높이 20여 미터의 청량폭포가 있고 청량폭포를 지나면 중백운대로 이어지는 능선길과 계곡으로 계속되는 두 갈래 길이 나타난다. 중백운대로 오르는 길은 가파른 암릉길이다.
중백운대에서 상백운대 (535m) 로 가는 길은 경사가 완만한 밋밋한 길이지만 능선 남쪽은 가파른 벼랑을 이루고 있다. 상백운대에서 선녀탕이 있는 계곡으로 바로 내려갈 수도 있고 아니면 나한대를 거쳐 정상인 의상대까지 간 후 원효폭포 쪽으로 하산할 수도 있다. 또한 의상대로 이어지는 능선 곳곳에 계곡 쪽으로 난 하산길이 있다. 이쪽 능선에서의 하산길들은 경사가 급한 편이지만 위험하지는 않다. 산 입구엔 구한말에 독립 만세운동을 이끌었던 "홍덕문선생 추모비" 가 있다. (한국관광공사에서 옮겨온 글)
소요산종주 : 공주봉 - 의상대 - 나한대 - 상백운대 - 중백운대 - 하백운대 - 자재암 - 하산
김장철이라 바쁜 한 주였다.
그래도 산행약속을 포기할 수는 없다. 짬을 내어 일을 보기로 하고 토요일 소요산으로 향한다.
주차비는 이천원, 입장료는 천원
주차장에서 오른족 자유수호박물관쪽으로 등산을 시작한다.
시작부터 길은 가파르다. 인적인 뜸한 곳(정식 등산로는 아닌것 같다)이어서 떨어진 커다란 갈잎때문에 미끄럽기도 하고..
약 삼십분은 이런 가파른 길을 올라야 한다.
바닥엔 온통 갈잎뿐 - 경사가 심한 길에서 땀을 흘리고 올라온 일행이 겉옷을 벗느라 부산하다.
요즘 산에 오르면 체온조절이 쉽지 않다. 잠시만 걸어도 땀이 나고 잠시만 쉬어도 춥기때문에 감기걸리리 십상이다.
공주봉 이전 첫번째 꼭대기인 헬리포트에 도착한다.
오늘 인원은 총 아홉명 - 연령대는 십대부터 육십대까지 다양하다.
걷고 또 걸어서..
공주봉에 도착한다.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전설이 얽힌곳..
공주봉엔 이렇게 널찍한 데크가 깔려있어 등산객들이 쉬기에 좋다.
동두천 시내를 조망하는 중- 산 아래는 희뿌연 안개에 덮여있다.
멀리 마차산과 감악산이 보인다는데,, 어디가 어딘지 잘 모르겠다.
쉬어가세나..
여기부터는 능선길이 이어진다. 움직이는 작은 돌들도 많고 암반은 갈아놓은듯 미끄러운 바위가 대부분이다.
의상대와 나한대를 지나서 간식시간을 갖는다. - 과일과 떡 삶은밤, 과자, 커피한잔, 그리고 약간의 술,, 아,참 컵라면도..
먹고 나니 즐거워라~~
북한산에만 백운대가 있는게 아니다. 소요산엔 백운대가 셋이나 된다. 상백운대, 중백운대, 하백운대
백운대의 노송이 멋드러지다. 저 너머는 깍아지른 절벽이다.
백운대를 끝으로 하산을 시작한다. 하산길은 짧지만 가파른 돌길이어서 조심스레 걸어야한다.
어른들을 따라 처음 산에 온 중학생 경호는 처음엔 씩씩하게 잘도 걷더니 내리막길에서 약간 힘이 드는듯하다.
스틱하나를 내어주고 조심할것을 당부한다. 참으로 착하고 귀여운 아이다..
원효대사가 수도했다는 절 자재암
소요산 입장료가 애초엔 이천원이었는데 천원으로 내렸다는..소요산의 95%가 자재암의 소유라는 등등의 변을 읽고있다.
여기가 청량폭포인가?? 가물어서 그런지 수량이 적다
뒤편 뾰족한 바위밑에 자연석굴 나한전이 있고 그 옆엔 약수가..
백운암..
전망대 - 내 오른쪽 아래엔 사진사 아저씨가 즉석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일주문을 지나 걷는 길가엔 단풍나무들이 아주 많다. 잎이 마르기는 했어도 그 고은빛이 아직도 남아있다.
널널하게 총 다섯시간 정도면 소요산을 종주한다. 작고 아담하지만 산의 온갖 요소들을 다 갖춘 아기자기한 산이다.
산이 품고있는 전설 또한 매력적인..
마음 편히 걸을 수 있는 육산은 아닌듯하다. 다른 계절엔 다시 한 번 와봐야겠다는 생각이든다..
뒤풀이 -- 지역적인 특성으로 이 곳엔 부대찌개집이 많다.
아주 유명한 집이라고 하는데 배가 고파서 그랬는지 맛은 괜찮았다.
먹는 일이 끝나자마자 냅다 서울로 달린다. 주말이어서 그런지 덕정을 지나 의정부를 통과하는데 차량정체가 있다.
집에 도착하여 옷만 갈아입고는 다시 천호동으로..
지난 수요일에 뽑아놓은 배추를 밤 늦은 시간까지 동생과 둘이서 절였다. 아,, 피곤!!
그래도 김장이 끝난 지금은 아주 홀가분한 기분인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