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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일지

북문을 거쳐 원효봉까지 - 봄 꽃산행 - 멧돼지 만난 날

by 혜산 2017. 4. 11.

4월의 봄날


전 날 내린 비로 대지가 청명하다.

사실은 주말에도 날씨는 좋았지만 쏟아지는 상춘 등산객들 사이를 헤치고 다닐 자신이 없어 그저 방콕했더랬다.

그런데 운좋게도 월요일까지도 맑은 하늘. 대박!!

열 일을 제치고라도 이런 날은 산을 올라야 한다.


산노을과 의기투합하여 오랫만에 버스를 타고 원행(?)을 하기로 작정.

원행이래봐야 원효봉이 우리의 목적지이다.

그동안 그저 걸어서 쉽게 닿을 수 있는 봉우리만 밟다보니 너무나 오랫만의 발걸음이다.

그리하여 내려야할 버스 정류장을 헷갈리며 관세농원 앞에서 내리고 보니 한정거장을 더 가야했던게 아닌가 싶게 오분이상을 찻길을 따라 걸어야했다. 차라리 버스를 환승하여 한정거장을 더 갈걸그랬다면 앞에가는 산노을의 뒷꼭지에 대고 불평을 해봤지만 돌아오는 것은 빨리 오라는 대답뿐.

한 낮의 태양은 이미 뜨겁고.. 짜증이 화악~ 밀려올 무렵 다행히 들머리를 찾았다.

산 길에 접어들고서야 비로서 전에 올랐던 기억들이 하나 둘 떠오르기 시작한다. 몇 년전의 일을 이렇게도 까맣게 잊을수가 있나..

흐르는 세월이 야속한게 아니라 무서울정도. 아니 사라지는 내 기억이 무섭당.


촌색시처럼 소박하고 어여뿐 꽃 진달래

요즘은 어딜가나 진달래 축제장이 넘쳐난다. 사진을 보면 온 산이 빨갱이,,

안이뻐 안이뻐~~

진달래는 이렇게 산 속 깊은 곳 아직 잎이 피지 않은 나무들 사이에서 청초하고 다소곳한 모습으로 피어있는 게 제격이지.







사실 이 코스는 가서는 안되는 길이다. 들어가지 말라는 표지판 뒤로 신작로처럼 잘 펼쳐진 길이빤히 보이는데 어찌 말소냐.

주저없이 들어선 길. 덕분에 더욱 조용해서 좋다.


전 날 내린 비 덕분인지 계곡엔 맑은 물이 흐른다.

졸졸 흐르는 냇물 소리를 벗삼에 커피타임을 가진다.

오늘의 바리스타 산노을




소금쟁이 ㅋ


살랑거리는 바람도 어른거리는 물살도 졸졸거리는 물소리도, 모두 모두 참 아름답다.

합쳐서 자연의 교향악이라고나 할까 ㅎㅎ





드디어 북문에 다가왔음을 알리는 성곽길이 나타난다.




오후 3시 20분 북문 도착

북문 너머 흙에서 뭔가를 캐고있는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들.


산노을이 조그맣게 듣고있던 음악소리를 듣더니, 음악 틀고 다니면 안된다고 일침을 주신다.

알았다고 얼른 끄는데 덧붙여 옆에 계신 젊은 여성분이 또 한마디 거드신다. 멧돼지 나오는 소리도 못들으면 어쩔려고 그러세요~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르건만. 뉘앙스가 어째 마음에 안든다.

슬쩍 화가 치미는듯 해서 대낮에도 멧돼지가 나오느냐고 한마디 하려다 참았다.

뒤이어 나올 연설이 뻔하고도 뻔해서 더 화를 돋굴것만 같았기에.

그러나 정말 이런말을 하고 싶기도 했다. 당신들이 우리보다 산을 어느만큼이나 더 잘 아느냐고.

내가 이렇게 열을 내는데는 이유가 있다. 그눔의 멧돼지 타령.


어쨋든 우리는 그네들에게 설교를 들을만큼 어리석지 않음을 자부한다.


북문 위쪽은 이제 통행불가.

예전엔 저 위에 올라 앉아 간식을 먹기도 했는데.

어, 이젠 못 올라가네 했더니 국공이 거긴 못올라갑니다 하고 또 거든다. 정말 할 일이 없는가보다. 말씀 안하셔도 보면 알거등~



그렇지만 어쨋든 예나 지금이나 북한산 최고의 전망은 변함이 없다!



잠시 그늘에 앉아 북한산의 주봉을, 그 기막히게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본다.




날씨가 맑기도 하지만 백운대의 깃발이 선명히 보일만큼 가까운 거리다.

저 염초봉을 오른것이 언제이던가..


만경대와 노적봉



얼기설기 돌을 쌓아 만든 성곽길을 걸어 원효봉 정상을 오른다.



의상능선의 아름다운 산줄기를 바라보는 멋진 조망터



헤프닝 하나 - 쌓아놓은 돌무더기가 시원찮은 성곽 위를 웬 나이지긋한 아저씨가 올라서서 저 의상능선을 찍고 있는거다.

그것도 국공이 내려오라고 소리를 지르는 바로 앞에서.

도대체 원효봉엔 왜 등산객보다 국공이 더 많은것인지.

암튼 너는 짖어라, 나는 하고픈 일을 마저 할터이다 하듯이 찍을거 다 찍으며 덜거덕거리는 성곽길을 걷기까지 한다.

앞에서 목이 쉬어라 떠들어대는 국공을 생각해서라도 그냥 내려오면 될것을 궂이 처음 배낭을 놓은 곳까지 걸어가는 것이다.

일말의 대꾸도 없이.

그 아자씨는 정말 배짱이 대단한 듯 보였다. 열받은 국공이 마치 동네 쌈패처럼 할 말 안 할말을 가리지 않고 온갖 못된소리를 퍼부어대는데도.

젊은 국공은 그러나 자신의 본분을 좀 잊은듯 보였다.

제 말을 안듣는 등산객이 미워서 이성을 잃을 지경인거다. 오죽했으면 동료인 국공이 너무 심하다고 타이르기까지 할정도로.

국공끼리 나중엔 티격태격할 만큼 사안이 커지고 있는데 정작 원인제공자는 성곽에서 내려오더니 힉! 하고 한번 웃어주고는 멀쩡히 그 자리에 서서 두 사람이 떠드는 소리를 제삼자처럼 듣고 서 있으니..

요즘 세상 사람들 왜이래~




우린 그늘에서 시원한 배나 한 쪽 먹고 가련다.







이제는 원효암 쪽으로 하산한다.






멀리 도봉까지도 선명한 멋진 날



의상봉을 필두로 줄을 선 봉우리들. 그 너머로 뾰족한 비봉이 살짝 엿보인다.


어찌 돌을 파서 이렇게 계단을 만들었을까.. 전엔 이렇지 않았던것 같은데.

중국의 황산에가서 배워온 실력인가 싶다. ㅋ



미국의 요세미티에만 반쪽짜리 바위가 있는게 아니여~  우리 북한산에도 있다고 ㅎㅎ

그런데 저 바위 아래 낭떠러지는 무섭다.

작은 암봉이지만 진짜 조심해야한다.


서쪽을 바라보니.. 인천 앞바다는 보이지 않아요


원효암 지난다.

오랜 세월이 흐른만큼 원효암도 퇴락한 느낌이다.

게다가 등산객을 위한 화장실은.. 어지간히 급하지 않으면 도저히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음. 문이 열려있어 강제로 바라볼수밖에 없는 광경에 아연실색.


여기에서 또 쉬어간다.


남아있는 뜨거운 물로 루이보스차를 한잔씩 더 마시고 가벼운 마음으로 하산.




시구문 지난다.






시키는대로 말도 잘듣는 산노을 ㅋㅋ

찍고 보니 재미있는 사진이 되었다.






이제 등산이 끝났나 싶었는데, 버스를 타지말고 집까지 둘레길을 걸어 가자네.

별 수 없이 다시 기나긴 둘레길을 걸었다.

진관사 곁을 지나 은평 한옥마을 - 다시 삼화사 옆길로 산고개를 넘어 선림사앞에 도착, 찻길을 걷기 싫어진 우리는 다시 고개를 넘어 팀 수양관 쪽으로 -- 그리고 마지막으로 산을 벗어나려고 팀수양관 근처에 다달을 무렵엔 이미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 때 무언가가 풀숲을 헤치고 달려가는 거다. 어찌나 빠르던지..

정신을 챙기고 바라보니 커다란 멧돼지!!!

산노을이 멧돼지라고 외치는것을 얼른 조용히 시켰다. 듣기로는 산짐승을 만났을때는 절대로 자극을 하면 안된다고 했으니.

멧돼지는 저만큼 가서 서더니 더 이상 달아나지않고 버티고 서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거다. (아마도 노려보고 있었을듯)

우리가 산을 내려가자면 멧돼지쪽으로 다가가야하는데 그랬다가는 자칫 우리가 공격하는줄 알고 덤빌지도 모르니 난감한 상황.

날은 이미 어두운데 이 일을 어쩐다지.

주위를 살피보니 멧돼지와 반대쪽 숲으로 갈만한 곳이 보이길래 그쪽으로 내려서니 비로서 멧돼지는 자취를 감췄다.

아이고 십년감수했네..

말이 씨 된다고 낮에 국공이 멧돼지 운운하더니 정말로 멧돼지를 만날줄이야.

민가가 지척인데 웬 멧돼지일까, 아마도 근처 밭에서 먹을거리를 조달하려고 근처에 숨어사는 놈일게다.

뒤를 돌아보니 현수막이 잔뜩이다. 샛길통행을 금지해라 멧돼지가 있을 수 있다 뭐 이런 내용인데 아마도 멧돼지가 모습을 보인게 우리에게만은 아닌 모양이다.

그나저나 이 일은 신고를 해? 말아? 어쩔?


둘레길을 걷다가 근처 다육이 농원에서 업어온 아이들

가격도 착하다.


요넘이 삼천원짜리로 제일 싸다. ㅎ 종종 들러야겠다.

다육이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 공부를 좀 할까~

암튼 길고도 소중한 하루 ^^